마이크로소프트 50주년 : 업계의 판도를 바꾼 7가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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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가 50년 전 4월에 설립될 당시, 50년은 고사하고 50주를 버틸 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매출이 거의 없는 3인 회사에서 주가 기준으로 약 1조 달러의 가치를 지닌, 190개국에 22만 8,000명의 직원을 둔 회사로 성장했다.
지난 50년 간 마이크로소프르를 성공으로 이끈 “게임 체인저”는 소개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역대 최대 실패 사례를 살펴보겠다.)
게이츠, 공유와 분배에 전쟁을 선포하다
197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PC 혁명이 시작되던 초기에는 1960년대식 이상주의가 지배적이었다. 초기 기술자들은 기술이 더 공정한 세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 모델로 지식과 작업을 자유롭게 공유했다. 이 현상은 영향력 있는 모임이었던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최초의 PC인 알테어 8800(수작업으로 조립해야 했던 모델)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팁과 조언을 교환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번째 제품은 알테어 8800용 BASIC 프로그래밍 언어의 버전이었다. 하지만 게이츠의 당황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다. 대신, 이 제품을 서로 무료로 공유했다.
그래서 1976년 2월, 빌 게이츠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애호가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을 보냈다. 이 편지는 게이츠가 도둑으로 여긴 이들에게 대한 전쟁 선포였으며, 나중에 마이크로소프트를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운영 원칙을 수립했다. 공개 서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품 판매로부터 우리가 얻는 로열티는 알테어 BASIC에 투자한 시간당 2달러도 안된다.”
“대부분 애호가가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은 소프트웨어를 훔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프트웨어를 만든 사람이 보상을 받는지 누가 신경 쓰겠는가?”
“누가 무상으로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애호가가 3년 동안 프로그래밍에 전념하고, 모든 버그를 찾고, 제품을 문서화하고, 무료로 배포할 수 있겠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여러분이 하는 일은 절도다.”
1960년대의 공유와 평등이라는 정신은 이렇게 끝났다. 이 편지는 효과가 있었다. 그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견실한 현금 흐름을 확보했다.
마이크로소프트, MS-DOS로 대성공
처음 몇 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PC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계속 개발하고 판매했다. 이는 수익성이 좋은 틈새시장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틈새시장 중에서도 작은 틈새시장이었다. 게이츠는 더 큰 계획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번째 돌파구는 1981년에 IBM이 마이크로소프트에 43만 달러를 지불하고, 아직 비밀로 유지되고 있던 출시 전의 새로운 PC용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기타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합의한 때였다. IBM은 이 계약이 매우 유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게이츠는 빅 블루를 능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같은 운영체제를 다른 PC 제조업체에 판매할 수 있는 조건을 협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의 운영체제를 DOS라고, 호환 운영체제를 MS-DOS라고 명명했다.
IBM PC의 소위 “복제본”이 시장에 넘쳐났고, 이들 PC는 모두 IBM의 PC와 호환되는 운영 체제가 필요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판매된 모든 제품에 대해 로열티를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곧 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DOS와 MS-DOS를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이나 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QDOS(Quick-and-dirty Operating System)라는 기존 운영체제를 5만 달러에 구입한 후, IBM의 PC와 클론에서 실행될 수 있도록 약간 수정했다.
윈도우가 세상을 지배하다
MS-DOS와 DOS를 실행하려면 명령줄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는 누구에게도 즐겁지 않고 특히 사용하기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IBM PC와 클론이 구식 세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애플은 1983년에 리사 컴퓨터를 위한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를, 1984년에는 획기적인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출시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그래픽 OS가 미래라는 것이 분명해졌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1985년에 윈도우의 첫 번째 버전을 출시했다. 그러나 첫 윈도우는 운영체제로 실행되지 않고 DOS 내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실행됐다. 윈도우 2.0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1990년에 윈도우 3.0을, 2년 후에는 개선된 버전인 윈도우 3.1을 출시했다. 윈도우 3.1은 MS-DOS보다 훨씬 사용하기 쉬웠다. 하지만 우아하지도, 매끄럽지도 않았고, 너무 자주 충돌이 발생했으며, 때로는 사용하기가 너무 어려워 머리를 긁적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PC의 표준으로 MS-DOS를 대체하기에 충분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운영체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예쁘지도, 사용하기 쉽지도, 신뢰할 수 있지도 않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가져다주는 주요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다음 목표인 기업 시장으로 진출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1970년대 취미용으로 시작된 PC 혁명이 기업 세계에로 확산됐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0년에 오피스를 출시하며 이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에는 소프트웨어 제품군(워드, 엑셀, 파워포인트)뿐만 아니라 서버 소프트웨어도 포함되어 있었다. 게이츠는 상어와 같은 전술로 경쟁사를 몰아냈으며, 그 중 일부는 독점 금지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SQL 서버, 파워 BI, 다이내믹스 365, 파워 플랫폼 등 수많은 다른 비즈니스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를 연이어 출시했고, 곧 기업 시장을 장악했다.
사티아 나델라, 스티브 발머의 후임으로 CEO 취임
2000년에 스티브 발머가 빌 게이츠의 CEO 자리를 대신했다. 다른 제품과 기술을 소홀히 하고 윈도우에만 집착하는 그의 강압적이고 때로는 광대 같은 리더십 아래 마이크로소프트는 서서히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했다. 모바일 혁명에 뒤처지고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도 이류로 전락했다. 발머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잘 통했던 허세와 비즈니스 전술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지만, 21세기에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2014년 사티아 나델라가 CEO로 취임했고,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누구?”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델라는 발머처럼 자랑스럽게 떠들거나 게이츠처럼 거만하게 행동하거나 불법적인 수단에 의지하지 않았다. 대신, 차분한 태도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새로운 세기로 이끌었다. 윈도우 모바일 같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실패한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회사를 전쟁터와 같은 영토 다툼이 아닌 원활하게 운영되는 조직으로 바꿨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시 기술의 선두 주자로 만들 새로운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클라우드로 전환
마이크로소프트는 2010년 발머의 지휘 아래 클라우드 플랫폼인 애저를 출시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나델라였다. 나델라는 회사의 초점을 윈도우에서 클라우드로 전환했다. 2024년에 이르러 마이크로소프트 인텔리전트 클라우드 사업부의 매출은 1,0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오피스 같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도 클라우드 서비스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회사가 됐다.
AI에 승부를 거는 마이크로소프트
6년 전,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시로서는 다소 의외의 투자로 스타트업 오픈AI에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 사실을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3년 후인 2022년 11월, 오픈AI의 챗GPT는 마이크로소프트의 120억 달러 추가 투자 덕분에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용 챗GPT인 코파일럿을 출시했다.
현재 코파일럿은 회사의 거의 모든 영역에 통합되어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와는 별도로 자체 AI팀과 제품을 구축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 분야의 세계 선두 주자가 됐으며, 견실한 출발점을 마련해 다음 50년을 준비하고 있다.
dl-itworld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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