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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과 2007년, 애플 역사를 바꾼 두 번의 키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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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애플을 취재해온 기자로서 수많은 애플 키노트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경험했다. 지금도 다음 키노트(한국 시간 6월 9일)를 기대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그러나 애플 고객, 개발자, 팬들이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현장에서 키노트를 직접 체험하는 것은 또 다른 특별함이 있다.

애플의 50년 역사에는 수많은 키노트 명장면이 있다. 저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다르겠지만, 필자에게는 두 번의 키노트가 단연 돋보인다. 성격은 전혀 달랐지만, 지난 반세기를 돌이켜봤을 때 두 행사 모두 애플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1997년 : 스티브 잡스 복귀, 빌 게이츠를 데려오다

1997년 8월 잡스의 Macworld 보스턴 키노트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레젠테이션이다. 그러나 화려한 퍼포먼스나 발표된 제품 때문이 아니었다. 실제로 새 제품은 단 하나도 발표되지 않았다. 당시 애플의 상황 자체가 전부였다.

애플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재정 손실이 이어지고, 맥 라인업은 엉망이었다. 맥 OS 라이선스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만큼 상황이 나빴다. 최고경영자 길 아멜리오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애플이 넥스트(NeXT)를 인수하면서 잡스가 복귀했고, 임시 CEO로 지명됐다.

2007년 Macworld 엑스포 키노트는 무역 박람회 개막식이라기보다 일종의 개입에 가까웠다.

이 배경이 1997년 8월 Macworld 엑스포 키노트의 분위기를 결정지었다. 잡스의 복귀 후 첫 키노트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귀환의 의식이었다. IDG의 콜린 크로퍼드가 키노트를 열며 애플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적어도 언론의 시각에서는 그랬다. 그 발언이 잡스를 위한 무대를 깔았고, 잡스는 애플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 내딛어야 할 첫걸음을 설명했다. “애플은 수많은 잘못된 것들을 훌륭하게 실행하고 있습니다”라고 잡스는 말했다.

당시 필자는 Macworld의 주요 경쟁 매체였던 맥유저(MacUser)의 부편집장으로 키노트를 취재했다. 수백 명이 함께 있는 별도 중계실에 배치됐는데, 메인 홀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잡스의 그 선언은 묵직하게 꽂혔다. 방 안이 잠시 술렁였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잡스가 어떻게 애플을, 나아가 우리를 구할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변화가 최상위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인 홀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고, 중계실에서는 환호성이 울렸다. 새 이사진이 소개됐고, 빌 캠벨이 호명되자 참석자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잡스가 창작 시장과 교육 시장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하자, 청중은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호응했다. 흥분이 고조되면서 공간 전체가 활기로 가득 찼다.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이 키노트는 훌륭한 출발점이었다. 잡스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쏟아냈다.

이윽고 잡스가 파트너십 이야기를 꺼냈다. 애플이 하필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트너십을 맺는다고 발표했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맥 OS 기본 브라우저로 설정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Steve Jobs discusses the Microsoft partnership at the 1997 macworld boston keynote

Apple

중계실은 충격에 빠졌다. 분노한 사람들로 소란스러웠고, 빌 게이츠가 화면에 등장해 몇 마디를 했지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악마와 거래를 맺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 키노트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고, 끝나고 나서는 모두가 기진맥진했다. 기술 이야기도, 신제품도, 화려한 시연도, 최신 개발 성과 발표도, 재치 있거나 어색한 코미디 순간도 없었다. 잡스는 쇼맨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 키노트는 또 다른 잡스를 보여줬다. 진솔하고, 직접적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잡스였다. 잡스는 순간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마케팅 클리셰와 기업의 공허한 언어가 통할 자리가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개입이었다. 애플은 다시 시작해야 했고, 잡스는 그 첫걸음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07년 : 아이폰

2007년 필자는 맥어딕트(MacAddict)의 리뷰 편집장으로 Macworld 샌프란시스코 키노트를 취재했다. 애플이 아이팟과 휴대폰을 결합한 기기로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루머가 무성했다. 기기의 모습을 둘러싼 추측이 난무했고, 전직 Macworld 칼럼니스트이자 최근 애플 관련 신간을 낸 인물조차 애플이 정말 그 일을 해낼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엑스포가 가까워질수록 아이폰 출시는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아이폰이 나올지가 아니라, 아이폰이 어떤 모습일지가 화두였다. 키노트 시작 전 모스콘 센터(Moscone Center) 웨스트 홀에 맥어딕트 동료 편집자들과 자리를 잡았을 때, 공기 중에 흥분이 감돌았다. 애플 키노트 전의 기대감은 항상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느낌이 모두에게 있었다.

2007년 키노트의 첫 15분은 거의 잊혀진 것이나 다름없다. 유튜브에서 키노트 영상을 찾으면 대부분 첫 부분이 잘린 복사본들이다. 그 15분 동안 잡스는 인텔 프로세서 전환 과정, 아이튠즈 판매 실적을 이야기했고, 애플 TV를 공식 발표했다.

그런 다음 잡스가 잠시 멈추고 물 한 모금을 마셨다. 클리커를 눌러 다음 슬라이드로 넘기며 말했다. “이 날을 2년 반 동안 기다려왔습니다.” 단단히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정말로 대단한 무언가가 펼쳐질 것이었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하나의 기기에 담긴 세 가지 기능, 회전식 다이얼 아이팟 이미지, 아이폰이 맥 OS X로 구동된다는 선언, 멀티터치 소개와 시연, 청중 속에 있던 조니 아이브와 필 실러에게 걸었던 전화 통화(두 사람 모두 폴더폰을 쓰고 있었다), 핀치 투 줌 시연, ‘완전한 인터넷’ 접속, 탭할 때마다 “붐”을 외치던 잡스, 그리고 싱귤러(Cingular) CEO 스탠 시그먼과의 어색한 막간 순서까지 말이다.

키노트 영상을 다시 보면 청중이 매우 조용했던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그랬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모두가 넋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 속에서조차 그려보지 못했던 제품이었다. 아이폰은 모든 기대를 뛰어넘었고, 우리는 그 역사적인 순간의 증인이 됐다. 당시 잡스는 전성기였다. 카리스마 넘치고, 친근하고, 공감을 자아냈다. 청중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았고, 청중은 기꺼이 그 시선을 내줬다. 지금까지 어떤 CEO도 잡스처럼 청중을 완전히 매료시키지 못했다. 노력하는 CEO들은 있지만, 잡스에게 키노트는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냥 해냈다.

이 키노트 전까지 필자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목격했다”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자주 쓰여 진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그 표현이 가장 정확한 묘사다.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그리고 한 천재가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는 행운을 누렸다. 앞으로 애플의 또 다른 50년에도 이런 순간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dl-itworld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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