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피디스크에서 클라우드까지, 변하지 않은 소프트웨어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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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개발 산업의 경제 구조는 언제나 다소 특이했다. 어떤 부분은 놀라울 만큼 확장성이 뛰어나지만, 또 어떤 부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격 책정은 늘 어려운 문제로, 적정한 수준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심지어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조차 ‘무엇’을 팔고 있는지를 명확히 정의하기 힘들었다. 여기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등장은 기존 질서 전체를 뒤흔드는 변수로 작용했다.
초창기 수십 년 동안, 모든 소프트웨어는 맞춤형이었다. IBM을 비롯한 기업이 메인프레임과 미니컴퓨터를 판매하던 시절의 소프트웨어는 일반적으로 하드웨어에 함께 제공됐으며, 고객마다 별도로 커스터마이징됐다. 이후 규모가 큰 기업은 내부 개발팀을 두고 자사 필요에 맞는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했다. 당시에는 대중적인 소프트웨어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는 비쌌고 이를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기업도 고가의 특수 하드웨어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에 한정됐다. 규모의 경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제품(product)’으로 본다는 개념은 미국 법무부가 IBM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하도록 강제한 반독점 소송을 계기로 등장했다. 이후 PC의 등장이 소프트웨어 시장을 대중화하는 전환점이 됐다.
한때는 컴퓨터랜드(Computerland) 같은 매장에 들어가 플로피디스크에 담긴 소프트웨어 상자를 둘러보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시어스(Sears) 같은 백화점에서도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살 수 있었다.
디스크를 팔던 시절
패키지 소프트웨어 시대의 경제 구조는 꽤 흥미로웠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버전을 출시할 때마다 코드를 작성하고 테스트하고 문서를 작성한 뒤, 플로피디스크나 CD-ROM, DVD 등에 굽고, 매장으로 배송하기 전까지는 단 한 푼의 수익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 당시 고객은 방대한 설명서를 기대했으므로 소프트웨어 패키지는 부피가 크고 운반이 힘든 물리적 제품이었다. 예컨대 유명한 ‘볼랜드 C 3.0(Borland C 3.0)’ 패키지 박스는 길이만 약 45cm에 달했고 무게는 11kg이 넘었다. 게다가 초기에는 설명서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고객은 무료 전화 기술 지원을 요구했고 실제로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 실시간 무료 전화 지원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후에는 분당 요금을 내는 유료 지원으로 전환됐고, 결국 모든 고객 지원은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PC 혁명은 셰어웨어(shareware) 모델을 탄생시켰다. 셰어웨어는 구입 전 사용해보는 방식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소규모 개발자가 널리 활용했다. 실행 파일은 사용자 모임에서 플로피디스크로 서로 주고받거나 컴퓨서브(CompuServe), AOL, 각종 BBS(bulletin board system) 같은 전용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다운로드하고, 이후에는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셰어웨어 프로그램은 기능이 제한되어 있거나, 내그웨어(nagware)처럼 반복적으로 결제 알림을 표시하거나, 일정 기간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사용자가 저자에게 수표를 우편으로 보내면, 개발자는 전체 기능을 활성화하는 라이선스 키를 되돌려주는 방식이었다. (필자 역시 1990년대에는 평범한 셰어웨어 개발자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인터넷 어디에도 당시 필자가 만든 프로그램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소프트웨어 판매나 배포 방식이 어떻든, 지금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버그는 존재했다. 업체는 업데이트와 패치를 제공해야 했고, 대개는 물리적인 매체로 이를 배포했다. 설치가 고정형(static install)이었기 때문에 수정은 드물고, 일정량이 쌓이면 한꺼번에 묶어 새 패키지처럼 발송했다. 즉, 사용자는 버그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새로운 기능 또한 마찬가지로 주요 버전 업데이트(major point release) 형태로 제공됐고, 사용자는 업그레이드를 위해 다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새 버전이 이전 버전보다 충분히 가치 있다고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새 버전이 불안정하다고 여겨지거나, 기존 버전이 안정적이고 충분히 잘 작동한다고 평가될 경우 그 어려움은 더욱 컸다.
이 시기에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사용자 단위(per seat)로 제품을 판매하고, 연간 유지보수 계약을 통해 정기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와 라이선스 전쟁
라이선스는 곧 소프트웨어 업계의 핵심 갈등 지점이 됐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판은 업체와 해커 간의 지속적인 싸움으로 번졌다. 더 많은 사용자 수가 필요한 중소기업은 종종 설치 수를 ‘조정’해 라이선스 비용을 줄이려 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동글(dongle)로, 프로그램이 실행되기 위해 컴퓨터에 반드시 꽂아야 하는 하드웨어 보안 키다. 이후에는 라이선스 서버나 인터넷 접속을 통한 인증 같은 기술이 도입됐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았고 불편했다.
흥미롭게도 일부 소프트웨어 기업은 불법 복제를 묵인하거나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불법 복제를 통해 소프트웨어가 더 널리 퍼질수록, 장기적으로는 합법적인 판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특히 학생이나 취미 개발자가 불법으로 사용하더라도 나중에 현업에서 일하게 되면 정식 구매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불법 복제는 마케팅보다 싸다(piracy is cheaper than marketing)”라는 말이 회자됐다. 물론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종종 조용히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이런 버전 단위 판매 구조는 기업의 매출에 큰 변동을 가져왔다. 특정 버전이 출시될 때마다 매출이 급등했다가, 그 이후에는 급격히 하락하는 ‘피크와 골짜기’가 반복됐다. 여기에 더해, ‘판매(sold)’라는 기준을 둘러싼 회계상의 회색지대도 존재했다. 소프트웨어가 창고를 떠나 소매점으로 출하되는 순간 판매로 잡을 것인지, 아니면 고객이 실제 계산대에서 결제한 시점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었다. 일부 기업은 분기 말 재무 실적을 높이기 위해 소프트웨어 상자를 대량으로 유통 채널에 밀어 넣은 뒤, 다음 달에 다시 회수하는 ‘채널 밀어넣기(pump the channel)’ 관행을 반복했다. 회계 조작에 가까운 이 같은 관행은 결국 사베인스-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의 진짜 가치
소프트웨어의 진정한 가치는 상자나 디스크 같은 물리적 제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컴퓨터 메모리에 담긴 비트와 바이트에 있다. 필자는 한때 유즈넷(Usenet) 토론에서 한 사람과 언쟁을 벌인 적 있다. 상대방은 “299달러나 냈는데 받은 건 형편없는 플로피디스크 세 장뿐이었다”라고 불평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며 소프트웨어 상자는 점점 얇아졌고, 설명서는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다만 한동안 온라인 도움말(online help)이라는 이름의 파일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hlp 파일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나서도 이 형태의 도움말을 고수하려 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어떻게 하죠?”, “만약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북쪽에서 인터넷이 끊기면요?”라는 식의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터넷 대역폭이 커지면서 물리적 소프트웨어 배포는 사라졌다. 지금 돌아보면 다행인 일이다. 예전에는 윈도용 워드퍼펙트(WordPerfect for Windows)를 설치하기 위해 3.5인치 플로피디스크 25장을 갈아 끼워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오늘날의 대형 소프트웨어라면 DVD 여러 장에 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제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우리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 설치’라는 개념 자체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파란색 설치 화면이 그립기도 하지만, 이제는 AOL에서 내려받은 새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 디스크 공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된 것이 반갑다.
이 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브라우저나 패키지 매니저를 통해 배포된다. 우리는 크롬에서 직접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거나 홈브루(Homebrew), 초콜리티(Chocolatey), APT 같은 설치 도구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한다.
이렇게 배포되는 소프트웨어 상당수가 오픈소스다. 오픈소스는 주류로 자리 잡기까지 험난한 길을 걸었다. 기존 상용 소프트웨어 기업은 무료 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픈소스의 명분은 분명했고, 기업은 결국 무료 기본 제품에 프리미엄 기능이나 지원 서비스를 결합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SaaS의 부상
이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결국 인터넷의 기반이 됐다. 자연스럽게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 SaaS) 모델이 주류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용자는 구독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SaaS는 과거의 물리적 배포 모델과 비교해 수많은 장점을 지닌다. 우선 트럭으로 상자를 배송할 필요가 없다. 명령줄 몇 줄만 입력하면 소프트웨어가 바로 컴퓨터에 나타난다. 구독 기반 매출 구조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수익을 안정화시키고, 재무 예측을 훨씬 용이하게 만든다. 버그 수정과 신규 기능은 테스트와 승인 절차를 거친 직후 사용자에게 즉시 제공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컴퓨팅 부담이 서버 측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덕분에 사용자 단말은 더 이상 강력한 CPU, 대용량 메모리, 거대한 저장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고 가벼운 기기만으로도 충분하다. 현재 필자 역시 대부분 업무를 크롬북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SaaS 역시 기업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까다로운 구조를 안고 있다.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무료 요금제를 기대하지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비용이 든다. 컴퓨팅 리소스는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난제는 무료 요금제가 충분히 유용해야 하지만, 너무 좋아서 유료 버전으로의 전환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AI가 등장하면서 경제 구조는 한층 더 복잡해졌다. AI는 막대한 연산 자원을 요구하며, 그 연산을 담당하는 GPU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력 소비 또한 엄청나 일부 기업은 아예 SMR(Small Modular Reactor)이나 온사이트 마이크로그리드 같은 독립형 발전원을 구축해 GPU 데이터센터를 구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무료 요금제로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요즘에는 유료 요금제조차 한계가 있다. 특히 AI 기업은 월 단위 구독 대신, 일정량의 토큰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토큰은 대략적인 처리 시간(연산량)의 단위로 간주된다.
결국 이 모든 요인이 겹치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제 구조는 다시 한 번 복잡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플로피디스크에서 클라우드 크레딧까지
소프트웨어로 돈을 버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물론 이를 훌륭하게 해낸 기업들도 있다. 오늘날 시가총액이 수조 달러에 이르는 여러 거대 기술 기업이 바로 그 예다. 심지어 일부 개인 개발자도 성공을 거뒀다. 예를 들어 필자가 존경하던 셰어웨어 개발자이자 윈집(WinZip)의 창시자 니코 막은 셰어웨어 성공 덕분에 지금쯤은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프트웨어를 소유한다’는 개념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언제든 브라우저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거대한 컴퓨팅 파워에 ‘접근권을 구입한다’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소프트웨어의 경제학은 언제나 특이했다. 소프트웨어는 설계와 개발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복제와 배포는 거의 공짜에 가깝다. 세월이 흘러도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 아이디어와 코드로 어떻게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 것인가? 우리는 포장 방식을 바꿨다. 플로피디스크에서 클라우드 크레딧으로, 물리적 매체에서 가상 자원으로. 하지만 수익을 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어쩌면 이것이 소프트웨어 산업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경제학은 변하지 않는다.
dl-itworld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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