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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력 수요 때문?” 미국, 원자력 안전 규정 ‘슬그머니 완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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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자력 규제 당국이 AI를 가동할 새로운 전력 용량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안전 규정을 비공개로 완화했다고 NPR이 보도했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National Public Radio)은 미국 에너지부(DoE)가 7월 4일까지 실험용 상용 원자로 3기를 가동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원자력 안전·보안 기준을 ‘조용히’ 재작성했다고 보도했다. NPR은 “SMR(Small Modular Reactor)로 알려진 새 세대 원자로 설계의 개발을 가속하기 위해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광범위한 변경이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또 해당 프로젝트가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공공 투자 자금까지 포함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아마존, 구글, 메타 등 빅테크가 “언젠가 SMR이 AI용 전력에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하길 바란다”라고 밝힌 점도 함께 짚었다.

NPR은 개정된 지침 문서 10여 건을 확보했다며, “원자로 보안을 위한 요구사항 수백 쪽을 대거 삭제했다”라고 보도했다.

규정 변경이 아니라  ‘규정 희석’

NPR에 따르면, 개정된 규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 지하수 관련 규정 완화. “지하수 보호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니다. 대신 기업은 방사성 오염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는 방안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모니터링과 문서화 요구사항도 완화됐다.” 수자원 보호를 위한 “최선의 가용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문구도 삭제됐고, 규정 문구에서 ‘금지’와 ‘의무’ 대신 ‘권고’나 ‘가능’ 같은 표현으로 바뀐 사례가 있다는 설명이다.
  • 환경 보호 요구 축소.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보다, ‘실용적이라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라고 제안하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예컨대 “DoE 운영에서 방사선 및 방사성 물질 방출로 인해 지역 생태계의 수생 동물·육상 식물·육상 동물 개체군이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방사선 관련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문장이, “단계적 접근을 활용해, 실행 가능하다면 수생 동물·육상 식물·육상 동물에 대한 잠재적 부정 영향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완화됐다.
  • 보안 규정 대폭 삭제. 새 지침에서 보안 관련 규정 수백 쪽이 잘려 나갔다. 500쪽이 넘던 문서가 23쪽짜리 지침으로 줄었고, 여러 핵심 항목이 글머리표 수준으로 축약됐다.
  • 방사성 폐기물 관리 지침 축소. 59쪽 분량의 매뉴얼이 25쪽짜리 지침으로 압축됐고, 폐기물 포장과 모니터링 요구사항이 빠졌다.

사고 조사 기준도 바뀌었다. NPR은 “작업자가 법적 허용선의 2배에 해당하는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는 사건이면 공식 사고 조사 대상이었지만, 새 지침은 기준을 4배로 올렸다”라고 전했다. DoE는 이런 변경의 취지를 “불필요한 규정을 줄이면 안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업계 혁신을 늘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NPR은 새 지침에서 원자력 안전의 핵심 원칙 가운데 하나인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개념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ALARA는 법적 한도 이하라도 가능한 한 방사선 노출을 더 낮추도록 요구하는 원칙으로, DoE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수십 년간 사용돼 왔다.

NPR은 “ALARA가 빠지면, 새 원자로가 더 적은 콘크리트 차폐로 건설될 수 있고 작업자는 더 긴 교대 근무를 하며 더 높은 방사선량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결과적으로 건설·운영 비용을 낮출 여지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규제 변경이 아니라, 위험 배분 방식 자체의 변경”

리서치 기업 그레이하운드 리서치(Greyhound Research)의 수석 애널리스트 산칫 비르 고기아는 “DoE가 원자력 안전의 근간을 조용히 해체하는 일은 단순한 규제 결정이 아니라, 앞으로 수년간 기업 인프라 위험이 어떻게 배분될지를 전면적으로 다시 쓰는 행위”라며, “역사적으로 원자력 안전은 공학적 엄격함뿐 아니라, 다층 거버넌스·독립적 감독·시스템 전반의 추적 가능성으로 정의돼 왔다”라고 말했다.

고기아는 SMR 기반 전력 조달을 검토하는 기업 책임자들이 “AI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원자로가 공개되지 않고 독립 감사도 받지 않으며 대중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내부 지침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고기아는 “위험은 전력망 끝단에 머물지 않는다. 이사회와 리스크 레지스터, 사업 연속성 계획까지 영향을 미친다. 감독 부재는 중립적이지 않다. 실패가 발생하는 순간까지 이자가 쌓이는 ‘부채 상품’처럼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CIO와 인프라 책임자, 지속가능성 담당자들은 계약·절차·운영을 통해 그 위험의 발판을 다시 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설계 의도가 운영상의 불확실성에 추월 당할 때, 그 결과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불안해지는 하이퍼스케일러의 ‘평판 리스크’

인포테크 리서치 그룹(Info-Tech Research Group)의 수석 연구 디렉터 브라이언 잭슨은 “기술 관점에서 보면, AI 데이터센터 전력을 확보해야 하는 하이퍼스케일러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라며, “이들이 SMR 개발에 자금을 대는데, 더 빨리 만들기 위해 안전상의 지름길을 택하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잭슨은 “구글이나 메타, 아마존이라면 걱정할 만하다. 데이터센터 부지에 원자로를 직접 두는 게 아니라서 방사능 사고의 직접 위험이 핵심은 아니지만, 자금을 댄 만큼 원자로가 사고를 내 사람이나 환경에 피해를 주면 평판 리스크가 생긴다”라고 지적했다.

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이미 적지 않다. 물 사용량, 전력 소비 규모, 그에 따른 배출 문제 등이 우려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하이퍼스케일러가 원자력을 선택하는 이유는 “탄소 배출이 적어 평판 리스크를 줄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다만 잭슨은 “원자력 발전소가 노동자나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킨다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다.

규정 변경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무어 인사이츠 앤 스트래티지(Moor Insights & Strategy)의 대표 애널리스트 맷 킴볼은 “누구도 규칙과 규정이 비공개로 다시 쓰이거나 편집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이런 조치는 대중이 의심하기 쉽게 만든다. 게다가 변경된 내용이 많아 무엇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해 충분히 평가하기도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킴볼은 “SMR을 더 빠르게 도입하기 위한 경로를 열기 위해 변경이 필요했을 가능성은 있다”라며, “SMR 배치를 위한 별도의 규정 체계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SMR은 크기가 작고 연료가 적으며 설계상 환경 영향이 더 작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심판이 홈팀 편을 든다”

킴볼은 SMR이 대형 원전과 같은 원리(제어된 핵분열로 열을 만들고 이를 전기로 전환)로 작동하지만, 설계상 지하수 오염 가능성, 물 사용량, 사고 발생 시 영향 등을 줄이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모든 구성 요소를 하나의 용기에 통합한 ‘일체형 원자로 설계’는 외부 배관을 없애 사고가 나더라도 내부에 가둘 수 있어 환경 영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 SMR은 공랭식으로도 운용할 수 있어 물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킴볼은 “원자력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대형 산업용 원전과 SMR이 다른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킴볼은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강화된 규정을 ‘새 원자력 시대’에 맞춰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정이 얼마나 ‘느슨해졌는지’, SMR과 대형 원전의 차이를 반영한 변경이 대부분인지 여부는 말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킴볼은 또 “하이퍼스케일러나 AI 데이터센터에 원자력이 왜 필요한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 시대가 왔고, 기존 발전 방식으로는 이 끝없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SMR 같은 전력 인프라는 책임감 있고 윤리적이며 안전한 방식으로 도입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CIO와 인프라 아키텍트 관점에서는 위험이 방사선 누출에만 그치지 않는다. 고기아는 “더 즉각적인 문제는 기계·열·소프트웨어 관련 시스템 이상이 NRC 수준으로 엄격하게 문서화·조사·상향 보고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가동 시간 보장, 사고 대응, 재해복구 프로토콜의 타당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전력 안정성은 덜 예측 가능해지고, 유지보수 창은 길어지며, 근본 원인 분석은 추정에 가까워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고기아는 “가장 과소평가된 변화는 어떤 규정이 삭제됐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충분한가’를 누가 결정하느냐이다”라며, “독립적인 NRC 감독에서 DoE 내부 승인으로 옮겨 가는 것은, 기업이 위험을 관리하는 방식과 원자로 안전이 통치되는 방식 사이에 근본적인 엇박자를 만든다. 쉽게 말해, 심판이 이제 홈팀 편을 드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dl-itworldkorea@foundry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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